전기차 온실가스 논란, 수명주기로 따져보기
전기차 온실가스 논란을 검색해 보면 “전기차가 더 친환경이다”는 말과 “배터리 때문에 오히려 더 더럽다”는 말이 동시에 보입니다.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리기 쉽습니다.
이 글에서는 광고 문구 대신,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수명주기(Life Cycle Assessment, LCA) 기준으로 단계별 비교합니다. 배터리 생산·차량 조립·주행에 쓰이는 연료나 전력·폐차와 재활용까지, 한 대의 차가 남기는 온실가스 흐름을 전체 그림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특히 “전기차를 사면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이는지”, “우리나라처럼 석탄발전 비중이 있는 국가에서도 여전히 도움이 되는지”를 현재까지 공개된 주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차분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전기차 온실가스 논란이 생기는 배경
전기차가 정말 친환경인지에 대한 논쟁은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첫째, 배터리와 차량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배출량, 둘째, 충전에 쓰이는 전력이 얼마나 깨끗한지입니다.
여러 수명주기 평가 연구에 따르면, 전기차는 배터리 때문에 제조 단계 배출량이 내연기관차보다 높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주행 단계에서는 연료 연소가 없고 에너지 효율이 높아서, km당 배출량이 내연기관차보다 크게 낮은 것이 공통된 결과입니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를 분석한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의 최근 연구에서는, 전기차가 같은 급의 휘발유 차량보다 수명주기 전체 온실가스를 약 73% 적게 배출한다는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환경보호청 자료에서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기차의 수명주기 배출량이 내연기관차보다 낮다는 결론이 반복해서 제시됩니다.
그럼에도 “석탄 발전이 많으면 전기차가 더 나쁘다”, “배터리 생산·폐기가 모든 이득을 없앤다”는 주장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이 글의 나머지 부분은 이런 주장들을 각 단계별 숫자로 나눠서 확인해 보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수명주기(LCA)로 나누어 보는 3단계 구조
LCA(수명주기 평가)는 한 대의 차량을 “출생부터 폐기까지” 세 단계로 나누어 봅니다.
- 제조 단계: 원자재 채굴, 부품·차체·배터리 생산, 조립
- 이용 단계: 주행 중 연료·전력 사용, 정비·타이어 등 소모품
- 폐기·재활용 단계: 차량 해체, 금속·배터리 재활용, 잔여 폐기물 처리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차이는 주로 두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제조 단계에서는 배터리 유무, 이용 단계에서는 휘발유·경유 vs 전력이라는 연료 차이입니다. 폐기 단계의 비중은 전체 배출량에서 상대적으로 작지만, 배터리 재활용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핵심만 먼저 정리하면,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차이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제조 단계: 전기차는 배터리 때문에 시작 배출량이 더 크다.
- 이용 단계: 동일 조건에서 km당 배출량은 전기차가 훨씬 낮다.
- 수명주기 전체: 대부분의 국가에서 전기차가 20~70% 적게 배출한다.
따라서 “전기차가 더 깨끗한가?”라는 질문은 결국 제조 단계의 추가 배출량을, 주행 단계에서 얼마나 빨리 만회하느냐의 문제로 정리됩니다. 이 손익분기점을 파악하는 것이 전기차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배터리 생산 단계: 시작선이 더 무거운 이유
전기차 제조 단계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부분이 바로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입니다. 배터리 셀과 팩을 만들 때는 많은 전기와 열이 필요하고, 니켈·리튬·코발트·그래파이트 같은 소재 정제 과정도 에너지를 많이 씁니다.
최신 메타 분석 연구들을 보면, 승용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의 탄소 발자국은 kWh당 대략 60~100 kgCO₂e 정도 범위에 모입니다. 같은 차량 급 기준으로 비교하면, 전기차의 제조 단계 배출량은 내연기관차보다 약 50~100% 정도 높은 경우가 많다는 결과가 반복해서 보고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역시 배터리 때문에 전기차가 더 나쁘다”는 인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조 단계의 배출량은 차량 수명 전체에서 보면 일회성입니다. 이후 수년 동안 주행하면서 발생하는 연료·전력 관련 배출량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배터리 공장의 전력 믹스에 따라 이 값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재생에너지·수력·원자력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kWh당 30kgCO₂e 안팎까지 낮춘 사례도 보고되고, 석탄 비중이 높은 전력망에서는 100kgCO₂e를 넘기도 합니다. 즉, 같은 전기차라도 어디에서 어떤 전력으로 배터리를 만들었는지에 따라 출발선의 온실가스가 달라집니다.
주행·연료 단계: km당 배출량 비교
주행 단계에서는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구조적인 차이가 분명합니다. 내연기관차는 엔진 효율이 30% 안팎에 그치는 반면, 전기차는 전기모터와 인버터 효율이 높아 전력의 70~80% 이상을 실제 구동에 쓰는 것이 가능합니다.
휘발유차의 경우, 연료 생산·정제·수송·주유소까지 포함한 전체 연료 주기를 고려하면 km당 대략 200~250gCO₂e 수준의 배출량으로 정리되는 연구가 많습니다. 반면 전기차는 차량 효율과 국가별 전력 탄소 배출계수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만,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국가들에서는 동급 내연기관차 대비 50~80% 낮은 km당 배출량이 계산됩니다.
유럽을 대상으로 한 ICCT 2025년 분석에서는, 판매 중인 전기차가 같은 급의 휘발유 차량보다 수명주기 전체 온실가스를 평균 73% 적게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에서는 전력 믹스가 지역마다 다른데, 여러 분석에서 “평균적인 전기차는 100mpg(리터당 42km) 수준의 가상 고효율 휘발유차와 비슷한 배출량”이라는 결과가 제시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석탄·가스 발전 비중이 있지만, 최근 통계 기준으로 전력 탄소 배출계수는 대략 380~410 gCO₂/kWh 수준으로 집계됩니다. 평균적인 중형 전기차가 100km당 15~17kWh를 사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주행 단계의 전력 관련 배출량은 km당 약 60~70gCO₂ 수준입니다. 여기에 전력 생산 과정의 추가 배출을 일부 더해도, 동급 내연기관차보다는 명확하게 낮은 편에 속합니다.
전력 믹스·주행거리별 분기점과 손익분기 주행거리
앞에서 본 것처럼 전기차는 제조 단계에서 손해를 보고, 주행 단계에서 이득을 보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타야 전기차가 온실가스 면에서 “이기는지”가 궁금해집니다.
여러 LCA 연구를 종합하면, 평균적인 중형 전기차는 제조 단계에서 내연기관차보다 약 5~10톤 정도 더 많은 CO₂를 먼저 배출하지만, 주행 단계에서 km당 100g 안팎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이 경우 손익분기 주행거리는 대략 2만~5만 km 구간 안에 들어옵니다. 일반적인 운행 패턴이라면 2년 안팎에 제조 단계의 추가 배출량을 모두 상쇄하고, 그 이후부터는 운행할수록 격차가 커지는 구조입니다.
석탄 발전 비중이 높은 전력망에서는 손익분기점이 더 뒤로 밀립니다. 보수적으로 가정한 분석에서는 약 7만 km 정도를 넘어서는 지점에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누적 배출량이 낮아지는 결과도 제시됩니다. 반대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는 지역에서는 1만~2만 km 사이에서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연간 주행거리가 매우 짧고(예: 연 5,000km 미만) 차량을 오래 보유하지 않을 계획이라면 온실가스 기준에서의 전기차 이득이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연 1만 km 이상, 7~10년 이상 타는 차량이라면 대부분의 전력 믹스 조건에서 전기차의 수명주기 배출량이 내연기관차보다 확실히 낮습니다.
자주 나오는 오해 Q&A로 보는 팩트체크
Q1. 석탄 발전이 많으면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더 나쁜가요?
여러 국제 비교 연구에서, 석탄 비중이 높은 전력망에서도 전기차의 수명주기 배출량이 내연기관차보다 낮다는 결과가 반복됩니다. 극단적으로 석탄 의존도가 높은 일부 가정에서만 비슷한 수준이 되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전력망은 시간이 갈수록 재생에너지·원자력 비중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같은 전기차를 10년 이상 타면, 후반부로 갈수록 충전에 사용되는 전기의 온실가스가 줄어들어 전체 수명주기 배출량도 더 낮아집니다.
Q2. 배터리 폐기가 심각해서 결과적으로 별 차이가 없지 않나요?
배터리 폐기·재활용은 환경 영향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이지만, 현재까지의 LCA에서 폐기·재활용 단계가 전체 온실가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결과가 많습니다. 금속 회수를 통한 재활용 비중이 올라가면, 오히려 제조 단계 배출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주요 배터리·자동차 업체들은 니켈·리튬·코발트 회수를 위한 재활용 체계를 이미 상용화하고 있고, 회수 효율과 경제성이 높아질수록 전기차 한 대당 수명주기 배출량도 함께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Q3. 하이브리드·플러그인하이브리드는 어떤가요?
여러 연구에서 하이브리드·플러그인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차보다는 낮고, 순수 전기차보다는 높은 수명주기 배출량을 보입니다. 특히 실제 운전자들이 플러그인하이브리드를 충분히 충전하지 않고 가솔린 모드 위주로 운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론적으로 기대했던 배출 저감 효과가 현실에서는 줄어드는 경향이 확인됩니다.
온실가스 기준에서 큰 폭의 감축을 목표로 한다면, 현 시점에서는 순수 전기차와 전력 부문의 탈탄소화가 가장 큰 효과를 내는 조합으로 평가됩니다.
정리: 어떤 사람에게 전기차가 의미 있는 선택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연구 결과를 정리하면, “온실가스 관점에서 전기차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내연기관차보다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제조 단계에서의 추가 배출량은 주행 과정에서 빠르게 상쇄되고, 전력망이 점점 저탄소로 바뀔수록 전기차의 이점은 더 커집니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같은 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음의 조건을 함께 고려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 연간 주행거리: 연 1만 km 이상, 7~10년 이상 탈 계획이라면 온실가스 절감 효과가 뚜렷하다.
- 전력 믹스: 재생에너지·원자력 비중이 올라갈수록 전기차의 수명주기 배출량은 더 낮아진다.
- 차량 클래스: 같은 급에서 비교해야 의미가 있다. 과도하게 큰 전기차는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 배터리·충전 인프라: 집·직장 주변의 충전 환경과 향후 배터리 보증·재활용 정책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전기차는 그 자체로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마법의 물건”은 아니지만, 도로 위의 개인 승용차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라는 점은 여러 국가·기관·연구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기차를 고민하고 있다면, 내 생활 패턴에서 얼마나 오래, 얼마나 멀리, 어떤 전력으로 충전하며 탈 것인지를 한 번 같이 그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위에 예산·충전 편의성·주행 감각 같은 요소들을 덧붙이면, 온실가스와 일상의 균형을 함께 고려한 선택에 가까워집니다.